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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19 21:45
Radiohead (라디오헤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34  



Radiohead (라디오헤드)

 


명실공히 최고의 밴드로 평가받고 있는 영국의 5인조 얼터너티브 록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는 그들의 데뷔앨범 [Pablo Honey]로 신진밴드의 놀라운 잠재력을 보여주었고, 여기 수록되었던 "Creep"은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처럼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커다란 히트를 기록했다. 첫 앨범의 엄청난 성공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반짝 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들 것으로 여겼으나 두 번째 앨범인 [The Bends]로 그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997년 앨범 [OK Computer] 이후 거창한 스케일로 변해버린 이들을 가리켜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밴드'라고 농담처럼 부르기도 한다. 라디오헤드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2000년에 영국의 음악관련 여론조사로 가장 권위 있는 '버진(Virgin) 올 타임 톱 1000 앨범'에는 뮤지션, 음악관계자, 평론가, 팬들을 망라해 무려 20만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늘 그렇듯 영국을 비롯해 서구에서 실시하는 음악관련 리서치는 어떤 것이나 대부분 비틀스가 1위를 차지하는 게 일종의 법칙처럼 되어있었다. 1위는 어김없이 비틀즈(Beatles)의 [Revolver]였다. 이 조사에서는 아주 눈 여겨 볼만한, 그야말로 반란에 가까운 이변이 일어났다. 비틀즈의 까마득한 후배 밴드인 라디오헤드의 앨범 [The Bends]와 [OK Computer]가 당당 2위와 4위에 오른 것이다. 비틀즈의 명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와 [Abbey Road]는 3위와 5위였다. 정상은 여전히 비틀즈였으나 라디오헤드의 [The Bends]가 이 두 역사적 명반을 꺾었다는 것은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자 영국 언론들은 일제히 '언제나 최고였던 비틀스의 견고한 로큰롤 왕관이 라디오헤드로부터 위협 받고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라디오헤드는 가장 영향력있는 밴드중의 하나가 되어있었다.

 

1986년 옥스퍼드 외곽에 위치한 애빙던 스쿨(Abingdon School)을 배경으로 활동하던 아마추어 펑크밴드 TNT에 속해있던 톰 요크(Thom Yorke:1968년생, 리드 보컬 & 리듬 기타 & 피아노, 일렉트로닉 프로그래밍)와 콜린 그린우드(Colin Greenwood:1969년생, 베이스 기타 & 신시사이저)는 밴드 해체 후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1968년생, 기타 & 백보컬)과 필 셀웨이(Phil Selway:1967년생, 드럼 & 퍼커션)를 받아들여 네 명의 라인업으로 라디오헤드의 전신인 '온 어 프라이데이(On A Friday)'-밴드의 연습이 보통 금요일에 있기 때문에-를 결성하게 된다.

 

당시 모두 미성년자였던 이들은 학업을 병행하며 밴드활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취미활동 이상의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톰 요크와 필 셀웨이, 그리고 콜린 그린우드가 1987년 대학진학을 위해 애빙던을 떠나게 되자 밴드의 활동도 시들해졌다. 멀리 떨어져있던 멤버들은 주말과 휴일에만 모여서 연습을 할 수 있었지만 밴드에 대한 애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대학 졸업후 이들은 콜린의 동생이자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1971년생, 리드 기타 & 키보드 & 일렉트로닉 프로그래밍)를 멤버로 받이들이고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에 전념하게된다.

 

그 후 수 차례의 공연과 두 장의 데모 테입 "On a Friday Demo"와 "The Manic Hedgehog Demo"의 발매로 그들의 이름이 서서히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무렵 옥스포드 지방 잡지 'Curfewd'의 표지모델로 선정되었고 'On A Friday' 는 각종 클럽, Pub 등으로부터 초대를 받으며 밴드의 인지도를 높였다. 인지도가 높아지고, 공연이 계속 이어지자 밴드는 조금씩 그들이 몸담을 레이블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1991년 11월 21일 밴드는 팔로폰(Parlophone) 레이블과 정식 계약한다.

밴드가 팔로폰에 입성하자마자 한 가장 첫 번째 일은 밴드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멤버들은 모두가 좋아하던 그룹 토킹 해즈(Talking Heads)의 앨범 [Trues Stories]에 있는 노래 제목이었던 'Radiohead'를 밴드의 새 이름으로 정하고, 1992년 5월 첫 메이저 레이블 EP인 [Drill]를 내놓는다. 라디오헤드가 드디어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Drill]는 차트에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보이지 못했지만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1992년 싱글 "Creep"이 발매되었다. 두 번째 EP를 녹음하면서 연습삼아 연주하였던 "Creep"은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완성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러스가 시작되기 전에 나오는 격렬한 기타음은 처음부터 이 곡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조니 그린우드가 노래를 망치기 위해 일부러 집어넣은 소리였지만 오히려 라디오헤드의 신화를 만드는 기초가 되어주었다. "Creep"은 라디오에 소개되거나 차트 히트를 기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히트를 기록, 최고의 록 명곡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찬송가로 평가되었다. 국내에서도 영화 <씨클로(Cyclo)>의 주제곡으로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라디오헤드의 대표적인 곡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993년 새해를 맞아 시작된 공연이 연일 매진되는 가운데 이들의 공연을 지켜본 한 저널리스트는 “라디오헤드는 완벽하다”는 한마디로 이들을 평가했다. 같은 해 라디오헤드의 데뷔 앨범인 [Pablo Honey]가 발표되었는데, 이 앨범은 미국내에서 브리티쉬/아이리쉬 음악의 성공을 재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앨범은 영국 차트에서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싱글 "Stop Whispering"와 "Anyone Can Play Guitar"가 발매되었으나 역시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영국 미디어의 이런 냉대로 인해 라디오헤드는 영국을 떠나 유럽과 미국 투어에 오르게 된다. 미국에서 발매된 "Creep"과 앨범 [Pablo Honey]는 여름내내 빌보드 차트에 머물렀고, MTV에서는 끊임없이 "Creep"의 뮤직비디오가 방영되었으며, 클럽 공연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였다. 라디오헤드는 벨리(Belly)와 티어스 포 피어스(Tears For Fears)의 오프닝 밴드로 미국 투어를 하게되는데, 이러한 공연 활동은 밴드를 알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Pablo Honey]는 골드를 기록했다. 스웨이드(Suede)의 미국 투어때만해도 라디오헤드의 성공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1993년 6월 런던 이브닝 스탠다드지(紙)가 “브리티쉬 팝이 미국을 강타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하고 라디오1의 DJ 스티브 라이트(Steve Wright)가 방송에서 이 기사를 소개함으로써 영국의 미디어들도 라디오헤드에 다시금 주목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빌보드 모던 락 차트 2위에까지 오르는 성공과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Creep"은 영국에서 재발매되었고 차트 7위에 오른 이후 한달간 20위권에 머물렀다.

 

지극히 자학적인 패배주의 가사와 우울한 멜로디로 전 세계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얼터너티브의 송가가 되어버린 "Creep"은 라디오헤드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역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이 곡 때문에 다른 곡들이 선의의 피해를 봐야했고 팬들은 오직 "Creep"만을 외쳐댔으며 많은 평론가들은 라디오헤드를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 즉 반짝하고 사라질 하루살이 밴드로 단정지어 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라디오헤드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존 레논(John Lennon), 뉴 오더(New Orede) 등의 앨범에 참여했던 존 레키(John Leckie)를 프로듀서로 맞이하여 1994년 9월 새로운 EP [My Iron Lung]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영국 언론의 호의적이지 않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언더그라운드 라디오 방송국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기대이상의 판매량을 보였으며, 라디오헤드의 골수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5년 발매된 라디오헤드의 두 번째 앨범 [The Bends]는 더욱 깊고 성숙한 사운드로 영국 평단의 호평과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싱글 "Fake Plastic Trees", "Just", 그리고 "Street Spirit (Fade Out)"가 영국 차트에 오르는 힛트를 거두었다. "Street Spirit (Fade Out)"는 이후 차트 5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같은 해 라디오헤드는 존경하는 밴드이자 그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밴드중 하나였던 R.E.M.의 앨범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서게 된다. 1995년 9월, 라디오헤드는 보스니아 어린이를 위한 기금 마련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Help] 앨범에 수록될 "Lucky"를 녹음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은 처음 "Creep"이 그러했듯이 라디오에서 거의 소개되어지지 못하는 불행을 겪게 된다. 하지만 [Help] 앨범의 대대적인 성공에 힘입어 라디오헤드는 자신들의 팬층을 넓힐 수 있었다. 소울 어사일럼(Soul Asylum)과 함께 미국 투어를 시작했지만 첫째 날 장비를 도둑맞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1995년 12월까지 유럽에서 성공적인 투어를 이끈 몇 안되는 영국 밴드로 평가받으면서 오아시스(Oasis)와 나란히 미국에서의 대규모 크리스마스 콘서트 무대에 오르면서 한 해를 화려하게 마감하였다.

 

왕성한 공연과 황당하면서도 신선한 재미를 주는 "Just"의 뮤직비디오로 1995년 말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The Bends]는 연말 영국 각종 순위에 얼굴을 내밀었고, 1996년 초에는 다시금 차트에 등장, 발매당시 6위까지 올랐던 기록을 무색케하며 4위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는 골드를 기록했다. 이들은 1996년 전반기를 투어 활동을 위해 할애했고 후반기부터는 세 번째 앨범 작업에 몰두했다. 오아시스와 함께 1996년 브릿 어워즈(Brit Awards) '최우수 앨범', '최우수 비디오("Just")', '최우수 밴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Help]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를 대표해서 톰 요크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프레디 머큐리(Feddie Mercury)상을 수상하였다.

 

라디오헤드는 또 한번의 변신을 위해 프로듀서로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를 영입하여, 그 결과, 1997년 록 음악계를 뒤흔든 앨범 [OK Computer]가 탄생하게 된다. 세기말의 변종 테크노 록을 선보이며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야심을 구체화시켰던 이 앨범의 소리는 한층 복잡해졌고 가사는 난해하기 짝이없었다. "Paranoid Android"(차트 3위), "OK Computer"(차트 1위)의 히트에 힘입어 라디오는 물론 TV에까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6분이 훨씬 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첫 싱글로 선택된 "Paranoid Android"는 꾸준히 라디오에서 소개되었다. 음악 팬들과 평론가들은 오랜만에 하나가 되어 이 앨범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음악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세계각국의 언론들은 앞다투어 취재에 열을 올렸으며, 각계의 유명 인사들도 자존심을 기꺼이 집어던지고 이들의 공연에 일반인의 자격으로 참가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영국 음악에 대한 미국의 텃세도 이 앨범 앞에서는 꺾일 수 밖에 없었다. 라디오헤드에 대해 MTV는 '지구 상에서 가장 뛰어난 밴드'라는 평가와 함께 처음으로 심층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에에 이른다. 제 40회 그래미의 'Best Alternative Music Performance(최우수 얼터너티브 뮤직)' 부문을 수상한 라디오헤드는 그 해 미국에서 또다시 연속 매진의 공연을 가졌고, 뉴욕의 전설적인 라디오 시티 홀(Radio City Hall)에서 두 번의 공연을 가지는 등 세계 각국에서 '최우수 밴드' 혹은 '최우수 앨범'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1997년과 1998년은 라디오헤드에게 있어서 최고의 해가 되었고, [OK Computer]는 록 역사상 가장 훌륭한 앨범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영미권에서만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기념비적인 음반이 되었다.

 

그 즈음 톰 요크는 제임스 라벨(James Lavelle)과 DJ 쉐도우(DJ Shadow)의 프로젝트인 엉클(U.N.K.L.E) 중 "Rabbit In Your Headlights"라는 곡에 참여하면서 목소리를 들려줬고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는데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실, 톰 요크는 스산한 일렉트로니카에 잘 어울리는 보컬이라는 걸 알려줬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라디오헤드는 2000년 10월, 마침내 [OK Computer] 이후 3년여만에 이들의 새로운 앨범 [Kid A]를 발표했다. 앨범 [Kid A]에 대해 비평가들은 최고의 점수를 줬지만 팬들은 난감한 반응을 보였다. 프로그래시브한 일렉트로니카를 들려주면서 다분히 자폐적인 내용의 노래들로 채운 이 앨범을 발표하면서, 라디오헤드는 일절 싱글 커트도 뮤직 비디오 제작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결국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도 상업성이 따라주는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앨범 타이틀 [Kid A]는 최초의 복제인간을 뜻하는 말로, 당시 논란의 대상이었던 복제 인간 문제(톰 요크는 웹 채팅에서 그것이 이미 만들어져있다고 주장했다)를 테크노의 어법으로 풀어내는 역설의 미학을 보였다. 일렉트릭 기타의 강렬한 소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모호한 전자음과 앰비언트 사운드 그리고 소음이 뒤엉켜 있었다. 록의 형식미를 철저히 파괴했다는 설명이다. 미래를 비관적이고 냉소적으로 보는 그의 입장이 고스란히 투영된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발전상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수록곡 "Morning Bell"을 코펜하겐에서 녹음하던 때를 회상하며 기타리스트 에드 오브라이언이 "모든 게 어둡고 추웠으며늘 우린 택시에서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창조와 실험에 목숨을 거는 아티스트로에게 부과되는 영원한 짐인 차기작의 중압감이었다. 결국 이를 당당히 극복, 아티스트의 자유를 곧추 세웠기에 톰 요크와 라디오헤드는 세계 최고의 밴드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라디오헤드는 [Kid A]로 2001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Best Alternative Album)'을 수상하였으며 '그 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에 노미네이트되었다.

 

[Kid A]가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끝에 나왔다면 그 다음 앨범인 [Amnesiac]은 1년도 채 걸리지 않아 발표되었다. 라디오헤드가 2000년 가을 뉴포트에서 가졌던 텐트투어와 뉴욕 공연, 그리고 2001년 1월 24일 유타주 파크 시티에서 펼쳐진 공연에서 이미 아직 발매되지 않았던 [Amnesiac]의 곡들("Pyramid Song", "I Might Be Wrong", "Knives Out" 등)을 미리 선보인 바 있었다. [Amnesiac]은 [OK Computer]와 [Kid A]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그 어떤 앨범과도 달라진 느낌이었다. 지난 18개월 동안 만들었던 곡들 중 전작 [Kid A]에 포함되지 않은 트랙과 신곡들로 채워진 [Amnesiac]은 [OK Computer]와 같은 라디오헤드 특유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Kid A]에서의 보여준 사운드의 실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OK Computer]로의 복귀도, [Kid A]의 답습도 아닌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음울한 기타 사운드와 톰 요크의 건조한 보컬, 근엄한 피아노 연주가 한데 어우러져 낯선 긴장감과 동시에 여전히 신비로운 매력을 전해주었다. 이 앨범 역시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빌보드 차트에 2위로 데뷔하며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되는 상업적인 성공도 함께 이루었다. 

 

2001년 라디오헤드는 [Kid A]와 [Amnesiac]의 수록곡들로 이루어진 라이브 앨범 [I Might Be Wrong: Live Recordings]을 발표하였는데, 그동안 라이브로 연주된 바 있지만 앨범으로 만날 수 없었던 "True Love Waits"가 수록되어 있었다.

앨범 발표 후 월드 투어를 하는 틈틈이 톰 요크는 새 앨범을 위한 곡을 만들었다. 많은 부담감속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된 이전 앨범들과는 달리 2003년 발표한 [Hail To The Thief]의 제작은 멤버들의 표현에 따르면 '릴렉스하게' 이루어졌다. 라디오헤드의 유명세와 새 앨범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으로 인해 마스터링 작업이 끝나지 않은 음원이 앨범 발표에 앞서 인터넷을 통해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초기의 기타 사운드와 후기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조화를 보인 [Hail To The Thief]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빌보드 차트 3위로 데뷔한 후 영국에서는 플래티넘을, 미국에서는 골드를 기록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Hail To The Thief]는 2003년 그래미 '최우수 얼터너티브 앨범(Best Alternative Album)'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프로듀서인 나이젤 고드리치(Nigel Godrich)와 Darrell Thorp는 'Best Engineered Album'의 수상자가 되었다.

 

2007년 라디오헤드의 일곱번째 정규 앨범 [In Rainbows]가 발매되었는데, 서정적인 가사와 특유의 몽환적이고 관념적인 사운드의 결합으로 매혹적이고 동시에 자극적인 이 앨범은 평론가들과 팬들로부터 극찬을 얻었다. [In Rainbows]를 발매하며 라디오헤드는 파격적인 판매방법을 시도했다. 온라인으로 원하는 만큼의 돈을 소비자가 결정하여 지불하여 다운로드 음원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60%정도가 0파운드로 구입했지만 이전 정규앨범의 디지털 다운로드를 합한것 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이 앨범은 영국에서는 2007년 말에, 그리고 미국에서는 2008년 초에 오프라인에서 발매되었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빌보드지는 이 앨범을 2위 앨범과 거의 2배에 달하는 점수차이로 '2007년 최고의 앨범(빌보드 평론가 선정)'으로 선정했다. 발표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이 앨범은 2007년 말 '빌보드 평론가 선정 2007년 최고앨범'으로 선정되면서, 2008년 1월 12일자 빌보드차트에서 156위에 올랐으며 2008년 1월 19일자 빌보드차트에서는 순식간에 1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2008년 첫 주차 영국앨범차트에서도 1위로 첫 등장하며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정상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