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P 
 Q 
체크 R 
 S 
 T 
 U 
 V 
 W 
 X 
 Y 
 Z 
어제 : 99, 오늘 : 465, 전체 : 279,344
 
작성일 : 20-02-09 18:36
Run DMC (런 디엠씨)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27  



Run DMC (런 디엠씨)
 

 
1980년대에 뉴욕 빈민가 출신의 가수들에 의해 선보여진 랩 음악은 서민 계층과 중산층 계층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런 디엠씨(Run D.M.C.), L.L. 쿨 제이(L.L. Cool J)같은 스타들을 배출해냈다. 그 중 특히 런 디엠씨는 랩 음악이 흑인들만의 향유 음악에서 벗어나 전 세계 팝 팬들에게 세력을 떨치게 된 1980년대 중반에 가장 큰 인기를 모았던 그룹이다.


런 디엠씨의 멤버 조셉 시몬즈와 대릴 맥대니얼스는 뉴욕 퀸즈 지역의 안락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뒤에 시몬즈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받은 양육 방식은 런 디엠씨의 팬들에게 긍정적인 사고를 부르짖게 해주었다고 밝힌바 있다.

"(대도시에 사는) 우리 팬들 중에 일부는 사는 지역과 부모들이 그들에게 전혀 긍정적인 면을 안겨주지 못한 관계로 매사에 긍정적이질 못합니다. 나는 중산층 가정 출신이고 또 우리 부모님들은 모범적인 분들이셨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게 된 열 살 때부터 나는 항상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시몬즈와 맥대니얼스는 십대 때부터 랩 음악 활동을 했다. 시몬즈는 열세 살 때 이미 코모도스(Commodores) 콘서트에 출연해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의 아들'로 소개되며 랩 스타 커티스 블로우의 무대에 올랐다. 그 뒤 그는 세인트 존스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공부했다. 런 디엠씨의 멤버들은 모두 같은 동네에서 자랐는데 시몬즈와 맥대니얼스가 랩 음악 활동을 해나간 반면 제이슨 미젤은 십대 시절 클럽의 DJ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그러다가 셋은 한데 뭉쳤고 미젤은 잼 마스터 제이(Jam Master Jay)라는 이름을 자신의 예명으로 쓰게 되었다.


1980년대 초 런 디엠씨는 뒤에 뉴욕 지역 디스코 랩 댄스 음악 레코딩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는 Profile 레코드사에서 첫 음반을 만들었다. 첫 싱글곡인 'It's Like That (And That's The Wat It Is)'는 1982년 흑인 음악 차트 Top 10까지 올라갔고 그 뒤 6개의 레코드가 차트에 더 올라갔다. 그 중에는 런 디엔씨의 데뷔 앨범 [Run D.M.C.](1983)도 포함되어 있다. 이 앨범에서 커팅된 싱글 'Rock Box'는 1984년 중반 이십만 장이 팔렸다.


또한 런 디엠씨는 순회 공연과 'Soul Train', 'Graffiti Rock', 'Entertainment Tonight'과 같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팬의 수를 늘려갔다. 1984년 한해동안 런 디엠씨는 Fresh Festival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뉴욕 출신인 커티스 블로우, 후디니(Whodini), 뉴클러스(Newcleus) 등의 랩 그룹과 함께 미국 내 29개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벌였다. 이들의 공연은 랩과 댄스가 함께 벌어지며 무대 위에는 랩퍼들과 DJ들, 매그니피션트 포스(Magnificent Force)같은 브레이크 댄스 그룹들이 출연했다.


1985년 초 Profile 레코드사에서는 런 디엠씨의 두 번째 앨범 [King Of Rock]이 나왔다. 런 디엠씨가 랩 음악의 선두 주자가 되는데 이 앨범의 히트는 단단히 한몫을 했다. 1986년 5월에 나온 [Raising Hell]도 골드를 기록했다. 이 앨범에는 런 디엠씨 멤버들이 록 밴드 에어로스미쓰(Aerosmith)의 스티븐 타일러(Steven Tyler), 조 페리(Joe Perry)와 함께 부른 록 음악 'Walk This Way'의 리메이크가 실려 하드 록과 랩의 조화를 선보였는데 이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는 인디 레이블에서 발표된 앨범으로서는 극히 드문 경우다)


1986년 여름 대규모의 청중들을 상대로 미국 순회 공연을 가질 때만 해도 런 디엠씨의 장래는 장미빛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1986년 8월 17일 캘리포니아의 롱 비치 지역에서 가진 공연이 악의를 지닌 갱단의 폭력 행위로 인해 엉망이 되는 바람에 언론으로부터 비난을 샀고 그 해 9월 로스앤젤레스 시 당국이 후원해주기로 했던 스트릿 페스티벌 공연을 포함한 여러 개의 공연이 취소됐다.

런 디엠씨 멤버들과 미 전역의 팬들은 그같은 갱들의 난동에 대해 지역 치안의 부재가 빚어낸 결과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런 디엠씨는 노래 가사에까지 이를 내뱉지는 않았다. 앨범 제목은 [Raising Hell]이지만 이들은 약물과 폭력을 삼갈 것과 교육의 중요성을 노래했다. 시몬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듭니다. 애들은 내게 이런 얘기를 자주 합니다. '저는 예전엔 학교를 잘 안 갔었는데 지금은 결석 안 해요. 왜냐면 아저씨가 우리들에게 바라는 바가 이런 거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흐뭇해지지요."


한편 미젤은 이렇게 말했다.

"갱단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들은 우리 메시지를 듣고 싶어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런 갱단을 우러러보는 애들은 우리 메시지를 받아들입니다. 그 애들은 갱단보다 우리를 더 우러러보고 갱단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지요."


1986년 말부터 87년까지는 공연시 아무런 소요도 일어나지 않았고 런 디엠씨는 롱 비치 사건은 잊고 미래의 계획에 의욕적으로 임하는 듯이 보였다. 런 디엠씨 멤버들은 1986년에는 공연 활동 외에 'Tougher Than Leather'라는 액션 어드벤처 영화에도 출연했다. 그런데 새 앨범 발매와 함께 영화를 개봉하려던 계획은 런 디엠씨와 Profile 레코드사간에 법정 분쟁이 제기되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 영화는 1987년에 완성이 됐으나 법정 공방은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Profile 레코드사와 출판 등록 대행업체인 Protoon사는 런 디엠씨의 매니지먼트 관리 회사 Rush 프로덕션(조셉 시몬즈의 형 러셀이 창립)측에 의해 미지불한 로열티 및 출판 수입으로 6백 80만 달러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걸렸다. 한편 Profile 레코드사 측은 그 해 8월 Rush측을 상대로 2백만 달러 배상 청구를 들고 나왔으며 런 디엠씨를 타사 레이블로 이적시킨 혐의로 러셀을 고소했고 1986년 10월 1일에 나올 예정이었던 새 앨범의 발매 무효 및 계약 파기를 주장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런 디엠씨는 같은 랩 그룹으로 1987년 [Licensed To Ill] 앨범으로 4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런 디엠씨의 아성을 위협한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와 함께 세계 순회 공연을 가졌다.


1987년 말부터 1988년 초까지 런 디엠씨의 새 앨범에 수록된 'Papa Crazy'가 큰 히트를 했다. 그러나 새 앨범의 정식 발매가 유보되어 1988년 초까지 이 노래를 제대로 구해 들을 수 있는 이들의 숫자는 극히 적었다. 드디어 1988년 봄 [Tougher Than Leather] 앨범이 정식 발매됐고 그 해 말 영화도 개봉할 수 있었다.

1991년 말에는 그때까지의 히트곡을 모은 [Greatest Hits 1983-1991] 앨범이 Profile 레코드사에서 발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