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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12:08
Prodigy (프로디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7  


Prodigy (프로디지)

 


중독성 강한 프로디지의 음악은 테크노씬에서 성장해왔지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밴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록의 메탈적 사운드를 받아들여 기존의 테크노와는 상이한 '하드코어 테크노'라는 변종을 만들어내었다. 4인조 테크노전사 프로디지의 일렉트릭과 리듬에 관한 꾸준한 실험은 전 세계를 거대한 댄스장으로 몰아넣었다.


테크노라는 용어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테크노 아티스트이기조차도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1990년대 최고의 테크노 스타로 '세계적인 영역표시'까지 끝낸 상태였다. 일부 평론가들과 DJ들은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비판하였지만 어두운 클럽문화를 메인 스트림으로 확대시켰다는 공로는 인정해야할 것이다. 비틀즈가 록의 예술성을 확립하였듯이 프로디지는 테크노의 미학과 대중성을 창조했다. 장르라는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한정된 범위에서의 안주에 반항하며 일렉트릭을 대중문화로서 확립을 시켜준 주인공이다.


힙합 레코드에서 따온 브레이크비트의 드럼 샘플과 환각적인 테크노가 합쳐진 프로디지의 거침없는 항해는 1990년대 초반 런던에서 시작되어 유럽뿐 아니라 미국까지 점령하였다. 테크노는 스카와 힙합, 거기다 출중한 춤솜씨와 어려서부터 쌓아온 건반실력으로 프로디지의 리더 리엄 하울렛(Liam Howlett)은 일렉트로닉의 격동기를 누릴 수 있는 준비된 아티스트였다. 프로디지의 레코드 중 들을 수 있는 기막힌 키보드 연주의 근원이다. 리엄은 1980년대 중반 컷투킬(Cut To Kill)이란 힙합그룹을 만들어 음악적 토대를 다졌고 레이브 문화에 심취해 디제잉(DJ-ing)으로 활동함으로써 커다란 나무가 될 프로디지의 자양분을 모두 섭취한 것이다.

'제2의 사랑의 여름'과 '애시드(Acid)'의 폭풍이 강타한 1988년, 레이브파티(Rave Party)에서 디제이를 하며 인기몰이에 나선 리엄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은 춤추는 것이라고 여기는 두 친구 리로이 손힐(Leeroy Thonhill)과 키스 플린트(Keith Flint)를 만나면서 프로디지의 구상에 들어간다. 리엄 하울렛이 처음 구입했던 신디사이저 '무그 프로디지(moog prodigy)'에서 이름을 딴 그들은 샤키(Sharky)라는 여성을 포함하여 MC로 활동하고 있던 맥심 리얼리티(Maxim Reality)와 함께 하게 된다. 1990년 샤키는 떠났고 XL 레코드사와의 계약을 체결한다. 나머지 4명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그들의 라인업이다.


1991년 처음으로 공개된 그들의 EP <What evil lurks>는 9명에서 시작된 그들의 관중을 12번째 공연에서 12000명이나 늘려주었다. 같은 해 영국차트 3위까지 올라간 그들의 첫 싱글인 '찰리(Charly)'가 발표된다. 'Charly'는 레게가 가미된 스타일로 그들이 보여줄 브레이크비트 하드코어의 전주곡이었다. 계속된 공연들과 함께 그들의 싱글 'Everybody in the place','Fire'는 히트 퍼레이드 이루게 되며 마침내 <The Prodigy Experience>란 레이브 씬에서 탄생한 최초의 걸작이란 찬사를 받은 정규앨범으로 재탄생된다. 하지만 테크노의 장사꾼이며 이단아란 비판도 뒤따랐다. 거기다 레이브씬의 퇴조는 프로디지가 한곳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대안은 보다 강한 사운드였다.

일반적인 테크노 뮤지션들과는 다르게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강해지는 열광적 브레이크 비트와 과격하고 공격적인 사운드는 1995년 발표된 <Music For The Jilted Generation>에서 완성미를 보여준다. 발매된 첫 주에 이미 영국 1위를 하였으며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슈퍼스타가 된다. 거기다 머큐리지의 '올해의 앨범'에 노미네이트 되는 행운까지 얻는다. 연이어 출시된 싱글 'Firestarter', 'Breathe'에서는 키스 프린트의 역량과 강한 기타 리프의 샘플링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다 더 록적이며 보다 더 강한 폭발성은 3년 후 <The Fat Of The Land>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더스트리얼의 잔향까지 느낄 수 있다. 이는 앨범 작업 중에도 악기로 직접 연주하는 언더월드(Underworld)나 케미컬 브라더스보다 더 강한 사운드이다. 덕분에 이 앨범에서는 장사꾼이라는 말 대신에 '로큰롤밴드', 혹은 '메탈밴드'라는 어색한 수식어가 붙는다. 그들도 이미 1995년 영국의 유명한 연례공연 글래스톤베리에서 시스템을 층층이 쌓아놓고 연기하는 것이 아닌, 가짜가 아닌 진짜 악기로 연주한다.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인 것이다. 로큰롤 밴드라는 호칭을 들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쇼'를 펼쳤다"라는 평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로큰롤 밴드라는 닉네임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싱글과 정규 앨범들은 공개와 동시에 화제를 일으켰다. 장사꾼으로 몰아가며 테크노라는 음악의 본질성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테크노와 락과의 결합을 커다란 논쟁의 요지로 몰아가는 일부 평론가들의 난도질적 구획은 음악에 대한 지식이 음악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듯 '독단을 가지고서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는 칸트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