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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12:05
Prince (프린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77  


Prince (프린스)

 

 

Prince는 수많은 재능 넘치는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으로 빛나는 음악 천재이자 음악 내외적으로 벌인 다양한 기행들을 통해 독자적인 캐릭터를 구축한 팝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작곡, 작사, 프로듀싱, 노래를 모두 해내는 Singer-Songwriter임은 물론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색소폰 등 수십 가지의 악기 연주를 뛰어난 수준으로 해내는 멀티 연주자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을 통해 Tevin Campbell과 같은 재능있는 뮤지션을 발굴할 정도로 인재를 알아보는 훌륭한 감식안을 가졌고, Sinead O' Connor, Cyndi Lauper, Madonna, The Bangles, Sheena Easton 등과 같은 수많은 가수의 히트곡을 작곡한 최고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Prince는 Michael Jackson, Lionel Richie와 더불어 80년대 흑인음악 최고의 인기 스타 3인방 중 한 사람이지만 그의 음악적 영역은 알엔비/소울/펑크와 같은 전통 흑인음악 장르를 넘어 록, 블루스, 재즈, 뉴 웨이브, 디스코, 신스 팝, 포크, 힙합, 전자음악, 사이키델릭 음악 등 시대와 인종을 막론하는 다양한 장르에 폭넓게 걸쳐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Prince 음악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장르는 바로 펑크와 록, 소울 음악이다. 이로 인해 그는 Jimi Hendrix 이후 최고의 흑인 록 뮤지션이자 James Brown의 펑크음악의 현대적인 계승자, 그리고 Stevie Wonder의 뒤를 잇는 소울 음악의 계승자라는 칭호를 모두 듣고 있는 풍부한 개성의 뮤지션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최고 히트 앨범인 [Purple Rain](1984)의 수록곡들을 비롯, "Kiss", "Diamonds and Pearls", "Adore",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 등의 곡이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일부 뮤지션들은 그의 음악을 노골적으로 모방했다는 혐의를 받을 정도로 팬들뿐만 아니라 뮤지션들에게도 존경과 참조의 대상이 된 '뮤지션들의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는 30장이 넘는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1억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하였으며, 데뷔 40년을 향해가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매년 1장 꼴로 앨범을 발매하며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고 있다.
 
Prince는 1958년 미국 미네소타(Minnesota) 주의 중심 도시인 Minneapolis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악기 연주 및 작곡에 흠뻑 빠진 채 성장기를 보냈으며, 성년이 되기 전인 1975년 무렵부터 이미 밴드 생활을 하면서 곡을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는 등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메이저 레이블 Warner뮤직과 음반 발매 계약을 체결한 Prince는 1978년 데뷔 앨범 [For You]를 발매하며 정식으로 음악계에 입문했다. 70년대 후반 큰 인기를 누리던 디스코 음악을 중심으로 펑크의 요소를 강조한 이 작품은 첫 싱글 "Soft and Wet"이 소폭의 주목을 받는데 그쳤다. 그러나 2집 [Prince](1979)에서 발매된 싱글 "I Wanna Be Your Lov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알엔비 차트 1위를 차지하며 Prince 최초의 히트곡이 되었고, 앨범 역시 백만 장 이상 팔리며 그는 성공적으로 음악계에 안착했다.
 
1980년에 발매된 3집 [Dirty Mind]는 이후 줄줄이 이어질 Prince의 '명반'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작곡, 작사, 편곡은 물론 모든 악기의 연주를 혼자 다 해낸 원맨 밴드 형식의 이 음반은 데뷔 초기의 디스코 음악과 더불어 록, 블루스, 소울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아내며 앞으로 이어질 Prince 스타일 음악의 시작을 알렸다. 또한 성(性)에 대한 노골적인 이야기들을 담은 가사 역시 화제가 되었는데, 덕분에 이 앨범은 미국의 학부모들에게 경계 대상 1호로 꼽히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는 "Uptown", "Dirty Mind" 등의 싱글이 알엔비 차트에서 사랑을 받았으며 앨범 자체는 45위까지 오르며 골드 레코드(50만장 이상 판매된 앨범)가 된다. 그러나 비교적 소폭의 히트를 기록한 차트 성적과는 달리 이 앨범은 발매 즉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Dirty Mind]는 8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알엔비/소울 음반임과 동시에 'Prince의 3대 명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다른 두 장은 6집 [Purple Rain]과 9집 [Sign o' the Times](1987)). 이듬해 발매된 4집 [Controversy](1981) 역시 음악적으로 [Dirty Mind]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이후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리메이크된 소울 발라드 "Do Me, Baby"가 사랑을 받으며 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흑인음악 마니아들을 및 평론가들 위주로 사랑받는 뮤지션이었던 Prince를 대중적인 스타로 만든 작품은 바로 5집 [1999](1982)였다. 대중적인 팝의 요소와 더불어 락의 에너지를 담은 기타 연주를 담으며 동시에 노골적인 성 묘사가 담긴 가사를 순화하며 변화를 꾀한 이 작품은 앨범 차트 9위까지 오르며 Prince의 앨범들 중 최초로 차트 Top 10에 진입하며 300만 장 이상 팔려나갔고, "1999"(싱글 차트 14위), "Delirious"(6위), "Little Red Corvette"(8위) 와 같은 Top 20히트곡을 잇달아 배출한 것이다. 이 앨범을 통해 스타의 자리에 올라선 Prince는 자신이 주연한 영화 'Purple Rain'의 사운드트랙을 통해 미국을 넘은 전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되며 'Michael Jackson의 라이벌'로 불리기에 이른다. 록, 블루스, 팝, 댄스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아낸 이 앨범은 차트 1위에 올랐음은 물론 오랫동안 차트 상위권에 머무르며 미국 내에서만 자그만치 1,300만장 이상의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고, 전 세계적으로도 총 2,000만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될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Let's Go Crazy", "When Doves Cry" 두 곡은 Prince의 싱글 사상 최초로 1위에 등극했으며 "Purple Rain", "I Would Die 4 U"가 Top 10에 진입하기도 했다. 이 앨범은 Michael Jackson의 [Thriller](1982)와 더불어 80년대 흑인음악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았으며, 현재까지도 다수의 음악 관련 매체에서 '명반'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보통 이러한 대형 히트작을 발매하면 투어 및 앨범 관련 활동으로 인해 후속작이 늦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창작력에 있어서만큼은 전 세계 어떤 뮤지션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Prince는 [Purple Rain]의 열기가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후속작 [Around the World in a Day](1985)을 내놓았다. 많은 이들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이 앨범은 [Purple Rain]에 실렸던 록 음악 기반의 대중적인 작품이 아닌, 사이키델릭 음악의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었으며, 이로 인해 이 앨범은 제2의 [Purple Rain]을 기대하던 사람들을 당황시키며 전작과 비교하면 굉장히 감소된 판매량을 보였다. 그러나 차트 2위에 오른 "Raspberry Beret", 7위에 오른 "Pop Life" 등의 싱글이 사랑을 받으며 앨범은 최종적으로 300만장 이상 판매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듬해인 1986년, Prince는 [Under the Cherry Moon]이라는 영화의 사운드트랙이자 그의 여덟 번째 정규작인 [Parade]를 발매하였는데, 아트 록(Art Rock)에 가까운 실험적인 색채가 돋보인 이 앨범은 백만 장의 판매고에 그쳤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는 펑키한 기타 연주가 돋보인 대중적인 싱글 "Kiss"가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곡은 여전히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라이브 무대에서 단골로 연주하는 레퍼토리로 사용될만큼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는 클래식으로 남아있다. 1987년 Prince는 두 장의 CD로 구성된 야심찬 더블 앨범 [Sign o' the Times]를 내놓았는데, 이 앨범은 록, 펑크, 소울, 팝, 댄스 음악이 종횡무진 뒤섞인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으로 팬들과 평론가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앨범에서 발매된 세 곡의 싱글 "Sign o' the Times", "U Got the Look", "I Could Never Take the Place of Your Man"이 Top 10에 진입하였으며, 알엔비 차트에서 인기를 모은 싱글 "If I Was Your Girlfriend"는 발매 당시보다도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된 이후에 주목 받으며 TLC를 비롯한 다양한 후배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후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펑키 댄스음악 앨범 [The Black Album]이 녹음을 끝마치고 사전 홍보 및 음반 인쇄까지 이루어지며 발매를 코 앞에 두었지만, Prince는 '음악이 너무 불순하고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앨범 발매를 취소하고 만다. 덕분에 홍보용으로 극 소량이 풀렸던 이 앨범은 한 동안 Prince 팬들과 음반 수집가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이 앨범은 1994년 정식 공개되었다). 대신 Prince는 밝고 종교적인 분위기의 앨범 [Lovesexy](1988)를 발매하였는데, Prince의 전신 누드가 담긴 파격적인 앨범 자켓이 화제를 모은 것에 비해 앨범의 판매량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골드 레코드 기록). 그러나 그는 영화 '배트맨' 1편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하여 싱글 "Batdance"를 1위에 올려 놓는 등 곧바로 상업적인 성과 부진에서 회복하였으며, [Graffiti Bridge](1990)와 [Diamonds and Pearls](1991), [Love Symbol](1992)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90년대에 들어와서도 변함 없는 인기를 과시하였다. 특히 [Diamonds and Pearls]에서는 오랜만의 차트 1위곡 "Cream"를 배출하기도 하였으며, 그 외에도 "Thieves in the Temple", "Diamonds and Pearls", "7" 등이 이 시기에 히트한 노래들이다.
 
1993년 Prince는 자신의 이름을 남성과 여성을 표시하는 기호를 뒤섞은 독자적인 기호([Love Symbol] 앨범의 공식 타이틀이 바로 이 기호이다)로 바꾸며 또 다시 화제에 올랐고, 이 기호를 어떻게 발음해야할 지 몰랐던 사람들은 한 동안 TAFKAP(The Artist Formerly Known as Prince, 예전에 Prince라고 알려졌던 아티스트)라는 약칭으로 그를 부르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세 장짜리 베스트 앨범(두 장의 베스트 앨범과 한 장의 싱글 B-side 곡 모음집)을 내놓았으며, 댄스곡이 중심이 된 작품 [Come](1994), 아름다운 사랑 노래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를 담은 EP [The Beautiful Experience], 펑크와 록의 요소가 강렬하게 표현된 [The Gold Experience](1995) 등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특히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는 차트 3위까지 오르며 미국은 물론 국내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Prince는 소속사인 Warner Music과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었으며, 베스트 앨범 및 [Come] 앨범 같은 경우는 빨리 소속사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싶어한 Prince가 약속된 앨범 갯수를 채우기 위해 밀어내기 식으로 내놓은 작품이기도 했다. 그 결과 계약 해지를 위한 지리한 법적인 공방이 이어졌고, Prince는 그의 경력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격렬한 하드록으로 채워진 앨범 [Chaos and Disorder](1996)를 내놓으며 그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이 앨범의 싱글 "Dinner with Delores"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자신의 뺨 위에 "slave", 즉 '노예'라는 글자를 새긴 모습을 보여주며 Warner Music을 비꼬기도 했다.
 
이러한 다툼으로 결국 Prince는 Warner Music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데 성공했으며, 자그만치 세 장의 CD로 이루어진 새 앨범 [Emancipation(해방)](1996)이라는 작품을 내놓으며 계약 해지를 자축했다.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 2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오랫만에 차트에서 성공한 작품이 되었으나 이 작품 이후 Prince는 점차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는 발매 예정이었으나 결국 취소되고 만 것으로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전설적인 앨범 [Crystal Ball](1988)을 세 장의 CD에 담아서 공개하기도 했고, Santana의 히트 앨범 [Supernatural](1999)와 마찬가지로 많은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앨범 [Rave Un2 the Joy Fantastic](1999) 앨범을 공개하며 젊은 팬들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앨범들은 모두 Prince의 이름값에 비하면 저조한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평단의 반응도 별로 좋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이제 Prince는 구 세대의 뮤지션으로 점차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Prince는 2001년 재즈 음악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앨범 [The Rainbow Children]을 내놓으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장르인 펑크, 록, 소울 음악을 중심으로 한 작품인 [Musicology](2003)를 통해 차트 상위권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앨범 차트 3위까지 오른 이 작품은 모처럼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적으로 성공했음은 물론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며 비평적으로도 인정 받았다. 이후 Prince는 [Musicology]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인 [3121](2006, 앨범 차트 1위), [Planet Earth](2007, 차트 3위)를 잇달아 발매하며 90년대 후반의 슬럼프를 딛고 재기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 시기 그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며 살아 있는 전설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했다. 2009년 [Lotusflo3r]와 [MPLSound]라는 두 장의 독립적인 앨범이 같이 묶여 있는 형태인 더블 앨범을 공개한 그는 2010년 잡지 부록의 형태로 신작 [20Ten]을 선보였고, 한동안의 공백기 끝에 2014년 하반기에 세 명의 여성 연주자로 이루어진 밴드 '3rdeyegirl'와 함께 4년만의 신작 [Plectrum Electrum]을, 또 그의 솔로 앨범 [Art Official Age]을 동시에 발매할 예정이다. 그리고 Prince는 이 두 앨범에 각각 수록될 싱글곡 "Whitecaps"와 "U Know"를 선공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