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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12:00
Pretenders, The (프리텐더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0  


Pretenders, The (프리텐더스)

 

 
프리텐더스는 거친 펑크와 대중적인 멜로디를 결합한 독특한 음악을 선보이며 높은 인기를 누렸던 뉴 웨이브 사운드의 대표주자이다. 록계의 소문난 여장부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가 이끄는 이들은 멤버들의 사망, 잦은 라인업의 변화와 같은 다양한 질곡을 겪으면서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음악적인 외길을 걸어왔다. 부침(浮沈)을 거듭하며 험난한 음악계를 헤쳐온 프리텐더스는 록 음악 히스토리의 한 페이지를 확실하게 장식하며 지금까지도 정열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프리텐더스의 역사는 홍일점인 팀의 리더 크리시 하인드(1951년 생)의 일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오하이오의 아크론에서 태어난 크리시 하인드는 십대 시절 이미 많은 음악을 접하며 뮤지션의 꿈을 열심히 키워나갔다. 그녀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동경하던 록의 본고장 영국으로 갈 것을 결심했고 곧바로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펑크의 도시에서 그녀는 말콤 맥라렌(Malcolm McLaren)의 옷가게(Sex) 점원으로, 또 영국 팝 주간지 〈NME〉의 자유 기고가로 일하며 몇 년간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당시 영국을 뒤흔들던 펑크 운동에 깊이 영향을 받은 크리시는 1978년 제임스 허니맨 스콧(James Honeyman-Scott/기타), 피트 파돈(Pete Farndon/베이스)과 함께 프리텐더스를 결성했다. 후에 마틴 챔버스(Martin Chambers/드럼)가 팀에 합류하며 밴드는 1980년대에 그 위용을 떨칠 준비를 완료했다.

같은 해 말 데뷔 싱글로 킹크스(Kinks)의 오리지널 'Stop your sobbing'을 커버해 영국 차트 40위권 내에 올려놓은 이들은 후속 싱글 'Kid'와 'Brass in pocket'(영국 1위, 미국 14위)을 히트시키며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1980년 지금까지도 록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첫 음반 〈Pretenders〉를 발표한 이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바람을 일으켰다. 섹시하면서도 남성미 넘치는 크리시 하인드의 야누스적인 매력과 순수 펑크의 난폭함에 멋진 멜로디를 접목시킨 신선한 음악이 원동력이었다. 데뷔 음반을 영국에서는 1위, 미국에서는 9위까지 올려놓은 이들은 곧바로 미국 투어에 나섰다. 크리시 하인드는 투어 도중 오랜 기간 그저 음악적 영웅으로만 숭배해왔던 킹크스의 리더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와 실제 연인 사이가 되는 기쁨도 누렸다(그러나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다).

1981년 프리텐더스는 전작과 유사한 음악성을 보여준 〈Pretenders Ⅱ〉를 내놓고 역시 레이 데이비스의 넘버인 'I go to sleep'(영국 10위)과 흥겨운 리듬의 'Message of love'를 히트시켰다. 음반도 다시 한번 톱 텐으로 밀어 올렸다. 그러나 이 시기에 밴드는 난관에 봉착했다. 1982년 6월 14일 피트는 약물 문제로 인해 팀에서 쫓겨났고, 이틀 후에는 크리시와 그룹을 이끌던 제임스가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했다. 피트 역시 그로부터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제임스와 같은 길을 걸었다. 크리시 하인드가 1983년 사랑하는 연인의 아이를 낳았지만 그룹의 미래는 어두워만 보였다.

남은 크리시와 마틴은 1982년 게스트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를 추모하는 곡 'Back on the chain gang'(5위)을 발표하고 그룹 재건에 나섰다. 1983년 프리텐더스는 로비 맥킨토시(Robbie McIntosh/기타)와 말콤 포스터(Malcolm Foster/베이스)를 영입하고 음악적인 성숙미를 한껏 과시한 〈Learning To Crawl〉(1984)을 내놓았다. 이들은 변함 없이 'Middle of the road'(19위), 'Show me'(28위)와 같은 곡들을 히트시켰고 평단의 호의적인 지지도 이끌어냈다. 음반은 5위까지 치솟았다. 프리텐더스는 역경 뒤에 찾아온 영광을 마음껏 누렸다. 이 시기에 크리시 하인드는 두 번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그룹 심플 마인즈(Simple Minds)의 보컬 짐 커(Jim Kerr)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결혼하며 연일 매스컴에 이름을 올렸다(그러나 역시 1990년 헤어지고 말았다).

1985년 밴드는 자선 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 참가했고, 크리시 하인드는 UB40의 레코딩에 참가해 'I got you babe'(28위)를 함께 불렀다. 이듬해 프리텐더스는 블레어 커닝햄(Blair Cunningham/드럼)과 T.M 스티븐스(T.M. Stevens/베이스)를 새롭게 영입하고 〈Get Close〉를 발표했다. 'Don't get me wrong'(10위)으로 변함 없는 히트를 기록했으며 'Hymn to her'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87년 밴드는 싱글 모음집 〈The Singles〉를 내놓았고, 크리시 하인드는 1988년 넬슨 만델라 콘서트(Nelson Mandela Concert)에서 UB40와 다시금 조우해 'Breakfast in bed'(영국 10위)를 부르기도 했다.

늘 잠복해 있던 멤버 불안이란 고질적인 병폐가 1990년대에는 기어이 밴드의 발목을 잡았다. 크리시와 커닝햄을 제외하고는 모두 멤버가 바뀐 진용으로 발표한 〈Packed!〉(1990)는 그룹의 하향세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심기일전한 이들은 오리지널 멤버 마틴 챔버스를 다시 불러들여 팀을 재정비했고 1994년 회심의 재기작 〈Last Of The Independents〉를 내놓았다. 프리텐더스는 아름다운 발라드 'I'll stand by you'(16위)를 히트시키며 예전의 명성을 회복했다. 밥 딜런(Bob Dylan) 원곡의 'Forever young'과 이들의 초기 사운드에 충실한 'Night in my vein'도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평단에서도 얼터너티브의 높은 파고에 굴하지 않은 이들의 재기를 환영했다. 프리텐더스는 1999년 'Popstar'와 'Human'이 담긴 〈Viva El Amor〉를 발표하며 고단했던 1990년대를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새 천년에도 이들의 활동은 계속됐다. 히트 넘버 20곡을 꼬박 채운 〈Greatest Hits〉(2000)로 파란만장했던 지난 20여 년을 결산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2002년에는 오랜 기간 정들었던 레이블 <워너(Warner)>를 떠나 <아르테미스(Artemis)>에 새 둥지를 틀고 〈Loose Screw〉를 내놓았다. 2003년 현재 프리텐더스는 새로운 투어를 계획하며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