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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11:02
Pete Sinfield (피트 신필드)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6  


Pete Sinfield (피트 신필드)

 

 
1943년 런던에서 태어난 피트 신필드(Pete Sinfield)는 1960년대 말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확립했던 전설적 그룹 킹 크림슨(King Crimson) 출신의 아티스트이다. 그의 어린 시절은 다른 뮤지션들의 삶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받은 교육은 음악 교육이 아니었다. 그는 첼시 아트스쿨(Chelsea Art School)에서 음악이 아닌 어휘의 사용과 의미에 대한 공부를 했고, 이후 그는 뮤지션이 아닌 회사원과 장인으로 생활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린 시절 받은 어휘에 대한 교육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여러 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계속 시를 썼고, 모로코, 스페인 등지의 유럽을 여행하며 식견을 넓혔다. 또 시에 대한 열정에 휩싸여 있었던 그는 시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었고,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키워나가며 20대 초반을 보낸다.


하지만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그가 자신을 드러낸 것은 시인이 아닌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이었다. 그는 1967년 인피니티(Infinity)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뮤지션의 반열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다.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뮤지션으로서 별다른 재주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별한 음악 교육도 받지 않았고,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열정을 쏟지도 않았던 그에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노랫말을 쓰는 데 있어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시인의 자격으로 뮤지션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1968년 인피니티의 멤버로 함께 활동했던 이안 맥도날드(Ian McDonald)가 킹 크림슨의 전신인 가일즈, 가일즈 앤 프립(Giles, Giles & Fripp)에 가입했고, 노랫말 쓰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피트 신필드를 그룹의 멤버들에게 소개한다. 피트 신필드가 프로그레시브 사(史)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피트는 분명 뮤지션이었지만 이 그룹에서 뮤지션으로서는 어떤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 그는 그룹에게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음악에 어울리는 초현실적인 가사를 제공했고, 밴드의 공연에서 조명, 앨범 디자인과 같은 음악 외적인 부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는 킹 크림슨(King Crimson)이 출범한 이후에도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그룹 내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당당하게 그룹의 일원으로 이름을 등록 시켰지만 그룹의 중심 인물인 로버트 프립은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존재를 무시했고, 결국 대 그룹 킹 크림슨에서 그의 파트는 작사였다.


결국 그는 로버트 프립과 대립하게 되고 1972년 <Islands> 앨범을 끝으로 킹 크림슨에서 탈퇴한다. 킹 크림슨을 떠난 이후 그는 드디어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앨범을 만들게 된다. 킹 크림슨에서의 활동을 통해 록계에서 지명도를 높인 덕분에 그의 솔로 데뷔에는 쟁쟁한 뮤지션들이 세션으로 참여한다. 기타에 그렉 레이크(Greg Lake), 색소폰에 멜 콜린스(Mel Collins), 피아노에 키스 티펫(Keith Tippet), 베이스에 보즈 버렐(Boz Burrell)과 존 웨톤(John Wetton), 드럼에 이안 월레스(Ian Wallace)가 세션으로 참여하였고 1973년 피트 신필드의 솔로 앨범 <Still>이 발매된다.

하지만 <Still>에서 그가 보여준 보컬로서, 또 작곡가로서의 역량은 주목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뛰어난 세션들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그럴 듯 하게 흘러나오지만 그 음악 속에서 피트 신필드라는 이름은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활동을 접고 작사가로서 또 프로듀서로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길을 걷기 시작한다. 솔로 앨범 제작 이전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활동했던 록시 뮤직(Roxy Music)의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그는 이후 프로듀서로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1970년대 초반 클래식을 과감하게 도입하며 가장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 평가받고 있는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이하 ELP))와 손을 잡은 그는 그들의 가사를 담당함은 물론 <Works Volume 1>, <Works Volume 2>에서는 프로듀서로 활약했고, ELP의 만티코어(Manticore)레이블을 만드는데도 깊이 관여한다. 또한 피트는 그의 존재 가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레미아타 포르네리아 마르코니(Premiata Forneria Marconi: 이하 PFM)의 세계시장 진출을 주도했는데, 이태리 아트록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The World Became The World>를 비롯한 PFM의 걸작들은 피트의 새로운 영어 가사와 프로듀싱으로 재창출되어 세계 시장으로 퍼지게 된다. 1970년대 중반까지 그는 맥도날드 앤 가일스(McDonald And Giles), 에스페란토(Esperanto) 등의 프로듀싱을 맡는 등 아트록 전성기 최고의 작사가, 프로듀서로 맹활약했다.


1970년대 후반 프로그레시브가 음악계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자 피트 신필드 역시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간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프로그레시브 작사가와 프로듀서로서의 길을 포기했고, 이후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 리오 세이어(Leo Sayer),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피터 세테라(Peter Cetera), 베트 미들러(Bette Midler), 셀린 디욘(Celine Dion),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 셰어(Cher)와 같은 팝 뮤지션들의 작사가로 활동을 이어 나가며, 독자적인 뮤지션으로서 길을 포기했다.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길을 포기한 그이지만 록 역사에서 그가 가지는 가치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1993년 유일한 솔로 앨범 <Still>에 두 곡의 미 발표곡, 'Can you forgive a fool', 'Hanging fire'가 추가된 앨범이 <Stillusion>이라는 제목을 달고 재발매 되었으며, 2001년 한국에서도 <Still> 앨범이 라이센스로 재발매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