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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6 09:57
Paul McCartney (폴 맥카트니)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62  


Paul McCartney (폴 맥카트니)
 


 
60년대에는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그룹 비틀즈(Beatles)의 멤버로, 70년대 이후에는 솔로주자로 활동하며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고 금세기 최고의 록 작곡가로서 성공을 구가하고 있는 음악인이 바로 폴 매카트니(James Paul McCartney)이다.


싱어송라이터인 그의 비틀즈 시절의 대표곡 'Yesterday'(65)는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서만 600만 번 이상 연주되어 왔고, 현재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최고의 애창곡으로 남아있다.

비틀즈 시절 야심만만한 폴은 밴드의 재정적인 지원을 담당할 비지니스 매니저로 그의 장인인 리 이스트먼(Lee Eastman)을 추천했지만 다른 멤버들과 의견 차이를 보이면서 내부 갈등을 겪게 된다.


또한 새로 영입된 프로듀서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스트링 편곡과 여성 백 보컬을 사용한 것에 불만을 품은 그는 70년 솔로 앨범인 [McCartney]를 발매한다. 비틀즈의 [Let It Be]가 출반되기 수개월 전에 앨범을 발표하고 음악잡지에 홍보 인터뷰를 가진 그는 인터뷰에서 비틀즈의 해체를 선언하게 된다.
이후 이익 배당을 문제로 법적인 소송을 걸면서 실질적으로 밴드를 해체시키게 된 폴은 자신의 회사인 매카트니 프로덕션을 설립한다.


팀의 해체에 따른 팬들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그가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부인인 린다 매카트니(Linda McCartney)의 백업 보컬로 완성된 그의 첫 앨범은 US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71년 두 번째 앨범인 [Ram]이 발매되기도 전에 싱글 'Another Day'가 대 히트를 기록하는 등 그의 인기 전선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71년 폴은 자신이 베이스와 리드 보컬을 맡고 아내 린다를 키보디스트 겸 백킹보컬로 하여 예전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기타리스트였던 데니 레인(Denny Laine)과 드러머 데니 세이웰(Denny Seiwell)을 영입해 윙즈(Wings)라는 밴드를 결성하였는데, 그 해 12월에 발매된 첫 앨범 [Wild Life]는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앨범 판매고도 비교적 저조하였다.
73년 그다지 좋은 비평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Red Rose Speedway]가 미국에서 차트 톱을 차지하고 이어 제임스 본드(James Bond) 영화 [Live and Let Die]의 주제음악을 담당해 톱 텐 히트를 기록한 그는, 이어 발표한 [Band on the Run](73)으로 비틀즈 이후 최고의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앨범으로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US 차트 4주 연속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는 등 다시 찾아온 행운에 고무된 폴은 기타에 지미 매클로치(Jimmy McCulloch)와 드러머 게오프 브리턴(Geoff Britton)을 영입해 윙즈를 재정비했고, [Venus and Mars](75), [At the Speed of Sound](76)로 인기를 누리며 전미투어를 실시한다.


78년 [London Town]의 'Mull of Kintyre'로 UK 정상에 등극하며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79년 [Back to the egg]로 연이어 상업적 성공을 누린 윙즈는 일본공연을 계획한다. 그러나 소량의 마리화나가 폴의 짐에서 발견되면서 공연은 취소되었고, 그는 10일 동안 구금되는 불명예를 입는다.


80년 윙즈의 영국 순회공연 후 솔로 앨범 [McCartney II]를 준비하던 그는 오랜 친구인 존 레논(John Lennon)의 죽음을 맞게 된다.


81년 윙즈가 해산된 후 솔로 활동에 전념하게 된 폴은 비틀즈의 전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George Martin)과 합작으로 세 번째 솔로 앨범인 [Tug of War](82)를 발표,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와 듀엣으로 녹음한 'Ebony and Ivory'가 넘버원의 자리에 오르면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다.
이듬해 가까이 지내는 음악동료인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싱글 'The Girl is Mine'에 보컬로 참여하고, 마이클 또한 폴의 앨범 [Pipes of Peace](83)에 'Say Say Say'를 불러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동료애를 과시한 그는 84년 영화 [Give My Regards to Broad Street]로 영화감독에 데뷔한다.


비록 영화는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지만 사운드트랙 앨범은 'No More Lonely Nights'의 히트에 힘입어 톱 셀링을 기록한다.


85년 코미디물 [Spies Like Us]의 배경음악을 담당하기도 한 폴은 86년 [Press to Play] 이후 록계의 거장인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와 함께 작업하며 [Flowers in the Dirt](89)를 발표해 솔로 전향 이래로 가장 큰 호평을 받게 된다.
MTV의 "Unplugged Show"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MTV Unplugged](91)를 발매하여 이후 타 아티스트들의 전형처럼 되어버린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 그는, 93년 기존 그의 스탠다드 음악인 팝/록 스타일의 앨범 [Off the Ground]를 발표한 이후 다른 장르의 음악으로 그의 실험정신을 구가하게 된다.


94년 파이어맨(Fireman)이라는 가명으로 테크노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 그는 91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었던 'The Liverpool Oratorio'를 작곡했던 것을 바탕으로 그의 두 번째 클래식 작품인 'The Leaf'(95)를 작곡했다.

[Oobu Joobu]라는 라디오 시리즈물의 진행자로, BBC 방송국의 비틀즈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 폴은 드디어 96년 비틀즈의 다큐멘터리 비디오에 존 레논의 미발표 데모곡 'Free As a Bird', 'Real Love'를 비롯해 오래도록 잊혀져있던 비틀즈의 데모곡들과 앨범 선곡에서 제외되었던 곡들을 담은 멀티 볼륨(multi-volume) 앨범이 합쳐진 [Beatles, Anthology]를 발표해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97년 베이비 붐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어쿠스틱한 매력으로 가득찬 [Flaming Pie]를 발표한 그는 영국과 미국 차트 2위를 차지하면서 그래미 그 해의 앨범(Album of the Year)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영국 황실로부터 기사 칭호의 영광을 얻게 된다.
98년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한 폴 메카트니는 음악활동 이외에도 동물보호와 채식주의를 주창하는 적극적 행동주의자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