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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2-05 23:36
Ozzy Osbourne (오지 오스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1  


Ozzy Osbourne (오지 오스본)
 


 
명실상부한 '헤비메틀계의 제왕'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은 근 20년간 록계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중 하나이다.
7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음악활동은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록계에서 수많은 화제를 낳았으며, 그가 개척해 온 정통 헤비메틀 사운드는 지금까지도 많은 후배 밴드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스본은 1948년 영국의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공장 근로자를 부모로 두었던 그는 매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몹시 어려웠던 그는 결국 좀도둑질을 하다가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한다.
그가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은 교도소를 출감하면서부터이다. 옛 친구가 소속된 밴드에서 보컬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아무런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지원했고 바로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오스본의 음악적 재능이 빛을 발하면서 밴드는 점점 더 성장해갔고 그 고장에선 제법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결국 오스본은 기타에 토니 아이오미(Tony Iommi), 베이스에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 드럼에 빌 워드(Bill Ward)와 함께 어스(Earth)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그러나 곧 동명의 밴드가 존재함을 알게 된 멤버들은 그룹명을 바꾸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너무나도 유명한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검은 안식일)였다.

1970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비롯하여 [Paranoid], [Master of Reality], [Sabbath Bloody Sabbath], [Sabotage], [Technical Ecstacy], [Never Say Die]를 발표한 오스본은 유명 뮤지션이 되었다.
그러나 심각한 약물과 알콜 중독에 빠진 그는 점점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이상한 행동까지 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룹 내의 다른 멤버들로부터 해고당하고 만다.
잇따라 그의 아내 Thelma와도 헤어지게 되는 불행을 맞은 오스본은 더욱 약물과 알콜의 나날을 보내며 어려운 시기를 겪는다.
이런 그의 생활에 전환점이 된 것은 그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샤론 아덴(Sharon Arden)을 만나면서부터이다. 그녀는 오스본이 솔로로 재기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고 그의 매니저 역할까지 담당하는 열의를 보였다.
결국 다시 용기를 얻고 음악활동을 재기하기로 마음먹은 오스본은 콰이어트 라이엇(Quiet Riot) 출신의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Randy Roads)를 영입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다.

1980년 데뷔 앨범 [Blizzard of Ozz]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발매 즉시 플레티넘을 기록하였고 이로써 오스본의 재기는 화려하게 이뤄진 셈이었다.
81년 이어진 앨범 [Diary of a Madman] 역시 정통 헤비메틀 사운드에 랜디 로즈의 뛰어난 기타 연주가 돋보인 작품으로써, 500만 장 이상 팔리는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 앨범 이후 벌어진 투어 콘서트에서 오스본은 관중에게 날고기를 던지며 살아있는 박쥐를 뜯어먹는 등의 혐오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결국 이 공연은 록 역사상 가장 문제 있던 콘서트로 기록되었으며,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란 그룹은 일반 대중들이 가장 눈살을 찌푸리는 밴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어서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82년 팀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명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Randy Roads)가 그만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새로운 기타리스트로 브래드 길리스(Brad Gillils)를 영입했지만 오스본은 먼저 간 로즈의 빈자리를 몹시도 안타까워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블랙 사바스의 커버곡들을 담은 라이브 앨범 [Speak of the Devil]을 발표한 후, 84년에는 다시 새로운 기타리스트 제이크 이 리(Jake E. Lee)를 영입하여 3번째 정규앨범 [Bark at the Moon]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도 꽤 성공을 거두며 2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다.
이 앨범 발표 후 몇 년간의 공백을 가졌던 오지 오스본은 88년 [No Rest for the Wicked]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차세대 기타 히어로 잭 와일드(Zakk Wylde)가 가세하면서 더욱 힘있고 풍성한 기타 사운드를 들려준 앨범이었다.

91년 다섯 번째 정규앨범 [No More Tears]는 오스본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으로써 다소 부드러운 사운드를 들려준 앨범이었다. 특히 이 앨범에 담긴 곡 'I Don't Wanna Change the World'는 그래미(Grammy) 시상식에서 Best Metal Song에 뽑히기도 했다.


93년에는 오스본의 음악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가 담긴 라이브 앨범 [Live and Loud]를 발표한다.


이후 오스본은 정식으로 밴드를 떠날 것을 밝히며 음악계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였지만, 95년 새 앨범 [Ozzmosis]를 발표하며 다시 음악 활동을 재기한다.

그후 기타리스트 잭 와일드는 랜디 로즈의 친구 조 홈스(Joe Holmes)로 바뀌게 되고, 96년부터는 오즈페스트 페스티발(Ozzfest festival) 투어를 벌인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스본은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보이며 팬들의 뜨거운 환호 속에 성공적인 투어를 이어갔고, 97년에는 그 동안의 미발표곡들을 모은 더블앨범 [Ozzman Cometh]를 발표했다.
98년부터 오스본은 다시 투어 활동을 벌이며 현재까지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헤비메틀이 있기까지는 바로 오지 오스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비록 약물과 알콜로 얼룩진 젊은 나날 속에서 사타니즘의 신봉자로 여겨질 만큼 어둡고 혐오스런 이미지를 보였으며, 또한 광란에 가까운 라이브 공연에서 있었던 많은 소란들로 대중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과 열성적인 음악 활동은 현재까지도 많은 팬들과 후배 밴드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