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is Redding (오티스 레딩)
60년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구가했던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은 비록 짧은 기간동안 팝계에서 활동했지만, 펑크(funk), 가스펠, 소울, R&B를 넘나드는 광범위한 보컬 스타일로 흑인 음악의 모든 것을 한껏 과시했던 아티스트이다.
또한 정통 R&B를 모던 소울 음악으로 전환시키는데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그의 정제된 작곡과 보컬 능력으로 상업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뮤지션이기도 하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가스펠 음악에 매료되었던 오티스는 R&B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로컬 밴드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62년까지 지역의 인기 밴드인 조니 앤 더 파인토퍼즈(Johnny and the Pinetoppers)에서 로드 매니저 겸 가수로 활동했던 그는 작곡 솜씨를 인정받아 스택스(Stax)의 자회사인 볼트(Volt)사와 계약을 맺고 62년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 해 발라드 곡 'These Arms of mine'이 R&B 히트를 기록, 8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명성을 얻었지만, 오티스의 본격적인 히트 퍼레이드는 65년 'Mr. Pitiful'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I've Been Loving You Too Long'(65), 'Respect'(65),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Satisfaction'(66) 등으로 빅 셀러를 기록한 그는 팝 차트에선 그리 크게 히트하지 않았지만, 소울 시장을 평정하며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롤링 스톤즈는 오티스의 'That's How Strong My Love Is'와 'Pain in My Heart'를 리메이크했고,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은 'Respect'로 스매쉬 히트를 기록했다.
67년 칼라 토마스(Carla Thomas)와 듀엣으로 'Tramp'를 불러 최고의 인기를 얻으며 백인 팝 팬들에게 어필하게 된 그는, 몬트레이 팝 페스티발에서의 연주 이래로 수퍼스타덤에 오르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순회공연 도중인 67년 12월 10일, 비행기 추락 사고로 오티스를 비롯한 4명의 밴드 멤버 전원이 사망하면서 그의 전성기는 아쉽게도 막을 내린다.
이후 유작 싱글로 스티브 크라퍼(Steve Cropper)의 기타 연주와 세련된 관악기 음색이 돋보인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가 68년 팝 차트 톱을 기록했고, 일련의 유작 앨범들이 발매되어 팬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비록 불의의 사고로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팝계에 많은 아쉬움을 남긴 오티스이지만 금관악기 편곡에 허스키하고 껄껄한 듯한 보컬 스타일, 흥겨운 파티 음악에서 가슴을 에이는 듯한 발라드까지 모든 음악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는 억압되지 않은 세련된 감정 표현 등으로 남부 딥 소울(Deep Soul)의 정수를 보여준 그의 음악은 이후에도 편집 앨범의 형태로 출반되어 그의 음악생활이 결코 짧게 끝나지 않았음을 입증했으며 그를 여전히 소울 음악계의 거장으로 자리잡게 하고 있다.